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야레알 CF (문단 편집) == 왜 노란 잠수함인가? == 비야레알은 라리가 데뷔 시즌이었던 1998-99 시즌 18위로 다시 2부 리그로 내려갔으며, 곧바로 승격에 성공한 이후 2000-01 시즌부터 2011-12 시즌까지 열한 시즌 연속으로 1부 리그에서 활동했다. 2002-03 시즌에는 공격력이 약해 득점 44점, 실점 55점을 각각 기록해 11승 15무 15패를 기록해 15위로 턱걸이했으나, 2002 UEFA 인터토토컵에선 결승까지 갈 정도로 선전했다. 2003년 프리시즌에서 당시 감독이던 베니토 플로로는 공격력 보강을 위해 인테르에서 뛰던 하비에르 파리노스의 컴백을 도와주려다 인테르가 비싼 이적료를 불러 무산됐고, 대신 올랭피크 리옹으로부터 소니 안데르송을 샀다. 뒤이어 AT 마드리드에서 수비수 파브리치오 콜로치니와 공격수 호세 마리를, 에스파뇰에서 미드필더 로헤르 가르시아를 각각 사서 퍼즐을 맞췄다. 단순히 살아남은 것만이 아니다. 이 시대 마지막 [[플레이메이커]]라 불린 미드필더, [[후안 로만 리켈메]]를 앞세운 비야레알은 2003-04 시즌에 [[UEFA컵]] 준결승에 진출했고, 2004-05 시즌에는 [[프리메라리가]] 3위에 오르며 창단 후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을 따냈다. 2005-06 시즌에는 처음 출전한 챔피언스 리그에서 [[인터밀란]]을 꺾고 4강까지 올라갔다. 2006-07 시즌은 막판 8연승으로 5위를 차지했으며, 2007-08 시즌에는 프리메라리가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우승팀 레알 마드리드에 승점 8점이 뒤졌고, 3위 [[FC 바르셀로나]]보다 10점이 앞선 77점을 얻었다. 2008-09 시즌에는 비록 리그는 5위로 아쉽게 다음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으나, 준우승 자격으로 출전한 챔피언스리그에는 8강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추락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2009년 여름 팀의 전성시대를 이끈 칠레 출신의 명장 [[마누엘 펠레그리니]]가 [[레알 마드리드 CF|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이후, 안정된 리더십을 잃었다. [[RCD 에스파뇰]][* 2006-07 시즌 UEFA컵 준우승을 이끌었다.]과 [[올림피아코스]]를 지도했던 에르네스토 발베르데를 감독으로 선임했으나 성적부진으로 중도 경질되었고, B팀을 이끌던 후안 카를로스 가리도가 팀을 잘 수습하여 그 시즌을 7위[* 당초 유로파리그 진출에 실패했으나, 5위 마요르카가 재정 문제로 유럽대항전 진출권을 박탈당하며 어부지리로 유로파리그를 따냈다.]로 마친 뒤, 2010-11 시즌 비야레알을 리그 4위와 유로파리그 4강으로 이끌며 다시 부활하는 듯 했다. 그러나 2011-12 시즌 성적 부진으로 두 차례의 감독 교체[* 가리도-몰리나-로티나]를 겪은 뒤 [[프리메라리가]] 최종전을 마친 뒤 비야레알은 17위 그라나다에 승점 1점이 뒤져서 18위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2부리그행을 받아들여야 했다. 2011-12 시즌 전반기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까지 출전했던 팀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어쩌면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6전전패의 기록은 충격적인 강등의 전조였는지도 모른다. 그뒤 20-21 시즌 아스날에서 경질된 우나이 에메리 감독을 선임한 후 구단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인 유로파리그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고 21-22 시즌에는 05-06시즌 이후 16년만에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하는 등 펠레그리니 감독 시절 이후 다시 한번 부활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잦은 승격과 강등을 경험했기 때문에 비야레알이 노란 잠수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잘못된 사실이다. [[비야레알]]이 이 별명을 처음 얻게 된 것은 창단 20주년을 맞던 1967년이다. 당시 선수단과 팬들은 4부리그(테르세라 디비시온)로 승격한 것을 자축하며 [[비틀즈]]의 "[[Yellow Submarine]]"을 스페인어로 번안해서 부른 것에서 따왔다.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에 절로 어깨가 들썩일만큼 신명나는 리듬이다. 발렌시아 자치주에 속한 비야레알의 연고지 카스테욘의 작은 도시 비야레알은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다. 게다가 유니폼 색상이 노란색이었기 때문에 비야레알 팬들은 이 노래를 좋아했다. --비틀즈의 위엄-- --, 링고 스타가 좋아합니다-- 비야레알의 유니폼이 노란색이 된 이유는, 1947년 창단 당시 리그 경기 출전에 앞서 빠듯한 일정 속에 구할 수 있었던 유니폼의 천이 노란색뿐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운명을 우연이 만든다는 이야기는 비야레알의 경우 정확히 들어맞는다. 1967년에 생긴 비야레알의 별명은 이후 팀의 행보와 그럴싸하게 어울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